전례상식_23(뜻을 알면 전례가 새롭습니다)
뜻을 알면 전례가 새롭습니다(39가지 전례상식). -정의철 신부님 지음-
‘성탄 대축일’과 공현 대축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가톨릭교회의 전례주기에서 양대 축을 이루는 주요한 축일은 ‘예수 부활 대축일’과 ‘예수 성탄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이 두 대축일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중 ‘예수 부활 대축일’은 구약 전승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예수 성탄 대축일’은 고대 그리스 및 로마 문화권에서 영향을 받아 4세기에 형성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과 로마인들은 관습적으로 생일 축제, 특히 황제나 저명한 사람들의 생일 축제를 지냈는데, 그들이 태어난 당일에 생일 축제를 지내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 당사자와 관련된 어느 의미 있는 날을 정하여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관습의 영향뿐 아니라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던 아리아니즘을 배격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아들이자 참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신 주님의 탄생일을 성대하게 경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탄생일을 정확히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뜻 깊은 다른 어느 날을 선정하는 것이 필연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선정된 날이 바로 새로운 해가 소생하는 날로서 태양신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이었습니다. 이 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은 곳으로 떠오르는 참 빛이요 태양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탄 대축일이 정해짐에 따라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 9개월 전인 3월 25일로 정해지게 되었고,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잉태되었으므로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이 6월 24일로 정해지게 된 것입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교회에서 만들어진 축일로 그 유래는 ‘예수 성탄 대축일’과 비슷합니다. 동방, 특히 이집트에서는 태양의 탄일 축제를 1월 6일에 지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서방교회의 성탄 축일과 같은 의미로 그 날로 정해 지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 지내던 주님의 공현 축일이 4세기 말엽에 서방교회에 도입됨에 따라 예수 성탄 축일과 혼돈되는 것을 막고 둘 사이에 차이점을 둘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이 공현 축일을 예수님의 세례와 관련시켜 후대에는 완전히 ‘주님 세례 축일’로 지내게 된 반면, 서방교회에서는 새로 탄생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 세계에 공포하는 뜻에서 동방으로부터 온 현자들의 방문을 부각시켜 ‘삼왕내조(三王來朝) 축일’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 성탄 대축일’과 ‘주님 공현 대축일’은 둘 다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를 고유한 주제로 삼기에 같은 의미의 축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태여 차이를 둔다면 ‘예수 성탄 대축일’은 가정 축제와 같이 하느님의 아들이 보잘것없는 인간이 되셨다는 강생의 신비에 더 치중하고, ‘주님 공현 대축일’은 세계적 축일로서 이 아기의 신적 차원으로 눈을 돌려 주님이 세상에 밝게 나타나셨음에 더 치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